천부적광대, 비나리의 명인

북 장구 징에 달통한 최고의 꽹쇠
북이 구름이고 장구가 비라면 징은 바람소리다.
사물중에서 꽹과리는 뇌성벽력에 비유된다.
혼신을 다해 신바람나게 두드려야만 산맥하나가 태어나고 바다가 숨을 멈춘다.
이 시대의 최고의 꽹쇠는 두말의 여지없이 이광수라 할 수 있다.
그의 꽹과리는 어느때는 흐르는 계류와 같고 장단속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만의 타법으로 인간의 고통과 환희, 고뇌와 한을 능란하게 다스린다.

[ 이세기의 인물탐구]


1952년 충남의 예산에서 태어난 이광수는 전문연희패(남사당패)를 이끌던 그의 부친 이점식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풍물과 함께 생활하며 남사당패 행중으로 활동하며 타고난 예술적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다.

남운용(남사당꼭두쇠), 촤성구(남사당 상쇠) 등의 대가들로부터 꽹과리,장구를 사사받았고, 차기준, 황금만(남사당 비나리) 선생께 비나리를 사사 받았으며, 전통예술의 공연을 통한 실제적 체험 속에서 성장한 그는 1962년 전국 농악 경연대회에서 개인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이 그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간 전국의 곳곳에서 공연활동을 하던 시절 그는 깊고 무한한 우리 전통예술의 각 부문에 심취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타고난 감성으로 그것을 소화해내 자신의 내면세계 속에 깊에 간직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예를 익히기 위하여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그의 피나는 노력은 오늘날 어떤 무대나 어떤 장소에서도 관객을 사로잡는 마력으로 승화되었다.

사물놀이 앉은반 중에서 펼치는 그의 쇠가락은 가히 일품이며 특히 살풀이, 액풀이, 축원덕담(비나리)등 각종 소리에서도 세계 최고의 예술성을 볼 수 있으며 지구촌 방방곡곡에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광수의 비나리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독특한 개성으로 창출해 내는 풍부하고 심오한 소리와 가락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으며 판굿에서는 상쇠놀음을 할 때에 펼치는 각종 부포놀음과 상쇠 발림,까치놀음 등을 통하여 이미 그의 몸짓과 흥에 합일되어 버린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Lee Kwang Soo and the Sounds of Arirang

Lee Kwnag soo is one of Korea's most widely Known traditional performing artists. The fact that he has been able to achieve such a high level of personal recognition in a society which places an enormous amount of value on artists who excel in the western classical music tradition is a tribute both to his skill as an performer and his own extraordinary charisma.

As a child Mr.Lee was billed as a prodigy. He attained early mastery of the K'Kwaengkwari(small gong) sa well as the changgo and other percussion instruments. The small gong player when in full costume wears a hat with a bundle of swan feathers or ostrich feathers on the top(Boopo). These ostrich feathers rotate and the performer combines the playing of intricate rhythms on the smalll gong with delicate flutters of the hat.
Mr.lee soon became well known as an performer in Korea and his fame spread world wide with the formation of the four member percussion group SamulNori in the early 1980's.
As a member of SamulNori Mr.Lee recorded close to two dozen albums which featured his playing on the small gong and at times his vocal abillities.
This album, however is devoted to this interpretations of Arirang and is an excellent opportunity for his fans to hear more of this compelling vocal talents.

Many people know at least one Koraen folk song-Arirang. But very few are aware that Arirang comes in many different versions. This album contains Arirang. Kin Arirang(Long Arirang) as well as versions of Arirang from Chungsun, Kangwon Province, Milyang and Jindo. Accompanying Mr. Lee are Kim Sung Un on piri(bamboo flute), Lee Chul Ji on daegum (transverse flute) and Han Seung Seok on a-jaeng.

Mr.Lee left SamulNori in the early 199-'s. He currently is active as a solo performer and participates in contemporary experimental and joint music projects with both Korean and foreign musicians.

Suzanna Oh

 
 


이광수와 아리랑

이보형(문화재 전문위원)

사물놀이가 처음 나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이광수의 구수한 쇠가락과 멋드러진 부포상모놀음 그리고 구성진 비나리가 큰 몫을 하였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광수 하면 뛰어난 쇠꾼으로 그리고 비나리꾼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 그가 한편으로 각종 아리랑 가락을 기가 막히게 부르는 소리꾼이라는 것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그의 소리 솜씨가 대단하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노는 자리에서나 혹은 시름에 겨워 한가락을 뽑을 때 맺힌 한을 담아 아리랑을 내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이번에 그의 이런 솜씨가 아까워 관현악 반주로 불르는 아리랑 여러 바탕과 구음을 담은 음반을 내었다.

이광수는 충청도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쇠꾼의 꿈을 키우고자 선생문하에 들어가서 경기충청 풍물가락을 배웠다. 그는 이내 쇠꾼으로 성장하여 풍물패 싹수 있는 잽이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남의 상쇠 뒤를 따르는 끝쇠로 만족할 그가 아니었다.기왕 쇠꾼으로 나선 바에는 이 방면의 일류 명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키웠고 그의 이런 바램이 본격적인 부포놀음 공부와 비나리 공부에 나선 것이다.
부포놀음은 김광열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고 비나리는 김복섭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다.
김광열로 말할 것 같으면 부포놀음을 잘해서 임방울 김연수와 같은 명창들과 함께 협율사에 참가한 명인이고 김복섭은 온갖 비나리에 능한 이 바닥의 최고의 명창이다.
부포놀음도 배웠겠다 비나리도 익혔겠다 상쇠로써 갖출것을 두루 갖춘 그가 사물놀이 창단에 참가하면서 세상에 그의 기량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한때 사물놀이로 세상을 흔들었거니와 이제 풍물패를 이끌고 사물놀이에 새로운 공연형태를 모색하는 공연에 활동하고 있다.
 
 
 
 
 
이광수와 비나리

이광수는 이 시대의 비나리쇠라고 지칭해도 잘못이 아니다. 이광수는 타고난 목구성을 가지고 탁월한 초성을지니고 있어서 비나리의 명인이라 지칭할 수도 있다. 사람이 소리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기준을 갖다 잴 수 있다. 사설이 풍부한 소리꾼도 있고, 탁월한 목청으로 소리의 고비고비를 잘 넘기는 소리꾼도 있다. 그러나 이광수는 소리초성도 좋고, 사설의 문서도 무궁무진하고, 소리의 배짱과 총기도 뚜렷하다. 게다가 오랫동안 비나리 소리를 다져 소리가 그윽하고 곰삭아서 사람의 영혼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정감을 자아내는 특색이 있다. 이광수의 비나리는 생에 대한 깊은 외경심을 일깨우는 찬가의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 속내는 잠든 신성을 일깨우고 , 신명을 이끄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 곧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남사당패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5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풍물 가락에 신명에 젖고, 남사당패의 대가들에게서 쇠가락과 장구 가락을 대물림 받았다. 그의 가락에 흐르고 있는 정신의 젖줄기는 남운용과 최성구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전국을 떠돌면서 그곳에서 겪은 산천초목의 소리가 또 한줄기였다. 남사당패의 신선한 삶 속에서 그 시절을 견뎌내고, 오늘날까지 살이 있으면서 제자를 양성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정말로 이 민족의 기쁨이다.
이광수는 쇠잽이로서도 유명하지만, 또한 비나리쇠로도 요긴한 가치를 지닌다. 이광수 이전의 명인이 모두 소멸하고 있는 이즈음에 이광수가 비나리를 온전히 아는 유일한 명인이 아닌가 싶다. 이광수에게 소리를 가르친 스승은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 남사당패의 비나리꾼이었던 차기준, 황금만, 김복섭 등은 특기할 만한 인물들이다. 비나리꾼으로 전통에 감싸안기면서 이광수는 편안한 창조를 할 수 있었고,비나리 역사에 근거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광수는 비나리라는 은금보화의 창고를 지키는 고직이가 아니다. 비나리쇠에게 물려받은 보물을 차곡차곡 꺼내서 세상 사람에게 가르쳐 주며 무엇이 진정한 소리인가 보여주려는 성실함을 간직한다. 그것은 사물놀이에서 보여준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예술의 근거가 무엇이가 보여주려는 자신감의 소산이기도 하다. 전통에서 뿌리를 내리고 이 시대의 가치를 뻗은 그는 예술적 창조자이다. 그래서 그는 고직이가 아니다.
이광수가 생애 50대에 왕성하게 펼쳐 보이고자 하는 셰계가 비나리임이 확실하다. 전통적인 비나리를 드러내면서도 비나리를 축으로 하는 주변부의 소리까지 섭렵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선고사 축원. 회심곡, 고사덕담 등을 총괄적으로 합쳐서 비나리가 뻗어낙라 자리를 힘껏 개척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비나리가 자라난 땅을 잊지 말일이다. 그것은 1960-1970년대의 남사당패의 터전이고, 1980-1990년은 사물놀이의 꽹과리의 상쇠이고, 1990년은 비나리쇠라는 수순적 변천에 말미암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비나리는 두터운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비나리꾼으로서의 이광수를 길이 기억해야한다. 이 음반에서 그의 참다운 가치를 만나게 된다.
“신나라 발간”-이광수의 소리굿 “비나리” 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