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민족음악원

이광수선생님글(대를 이은 민족음악) 조회수 : 2,114, 2010-06-30 15:29:43
  이 광 수

본래 나의 고향은 한벌이란 곳으로 큰 벌판을 뜻한다. 행정구역상으론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좌방리 (忠淸南道 礼山郡 五可面 坐方里 )이다.
내가 여섯 살이란 어린나이에 남사당패가 되는 데는 큰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수년전 일본식민지시대에 강제징용이란 제도가 있었는데 이를 거부한 나의 부친은 일본순사 2명을 요절을 내고 중국 만주 땅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남사당패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아마도 운명 이었던 듯싶다. 여기서 부친과 남사당패의 운명적인 만남에 있어 만주 땅에서의 남사당 활동연유와 사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전통 악기인 꽹과리, 징, 장구, 북의 사물은 우리 한국 민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악기로 그야말로 희비애락을 함께 하였으며 태초에 제천의식을 봉행 할 때나, 농경사회에서 힘든 농사일을 두레농악으로 , 또한 외적이 침략하였을 때는 전시 군악으로 , 경사나 조사가 있을 때도 사물이 연주되었다.
이렇듯 민족의 역사 속에서 겨레의 얼과 혼을 간직하며 민족을 뭉치게 하는 힘이 있었던 사물을 일제가 좋아 할리 없었다.  꽹과리 ,징은 군수 물품을 만든다고 다 뺏어가고 사물을 치면 엄청난 탄압을 가했던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에 남사당패는 만주 땅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러한 남사당과 징용을 거부하고 피신한 부친과의 만남은 우선 죽이 잘 맞았고 함께 다니며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기예를 익히며 지내다가 해방 될 무렵 귀국하였는데 고향에 와서는 동네 공익사업에 힘쓰면서 남사당패의 인연을 살려 다리를 놓는다든지 의용소방대를 창설한다든지 할 때에 모금 운동 차 남사당패를 모아 걸립을 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전국 팔도에서 잘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내가 태어나면서 6세 되던 해에 새미 (무동,舞童) 무동아이로 첫발을 들여 놓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최고가는 뜬쇠 스승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활동을 하던 차에 정권이 바뀌고 거국적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마을마다 초가가 스레트 지붕으로 바뀌고 집 없는 사람, 떠돌이, 등등을 잡아다가 국가 재건운동에 투입하여 우리 같이 전국을 유람하였던 놀이패도 성치 못했으며 더군다나 우리전통을 고성방가니 퇴폐풍조니 허례허식이라고 낙인하고 옛것, 미신이라고 치부하여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전승 한다는 목적으로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즉, 인간문화재를 만들어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전수하라 하였으나 남사당패와 같은 경우 평균 20~30명 단원들이 있고 연희종목도 수십 가지로 다양 하였으나 문화재 지정은 두 세분 정도로 한정되어 여러 많은 남사당의 기예가 그 분들 만으로 전수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고 안타깝게 스스로 연희 활동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강산이 한두 번 바뀔 정도로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세상은 우리의 문화를 잊게끔 하거나 꾹꾹 누르며  ‘오직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 라는 구호처럼 살며 국가를 재건하는데 많은 희생을 감수 하였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인다는 말과 같이 ‘혼탁한 세상일수록 문화가 살아야 한다.’는 뜻을 둔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 그동안의 남사당패 등 큰 스승 밑에서의 학습과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마당 판에서 갈고 닦았던 우리 전통 사물 악기의 두드림을 집대성 하여 무대로 올리며 소극장 운동을 펼쳤고 민족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오늘날 사물놀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물놀이는 32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수난의 민족사 속에서 대를 이은  남사당패의 후예들이 만들어낸 겨레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32년 전 고)김용배, 김덕수, 최종실, 나 이광수는 사물놀이란 이름을 탄생시켰으며 최종실은 삼천포 출신이고 용배, 덕수, 나는 충남 출신 이었다. 아마도 그런 배경에는 대백제의 중심지였던 공주, 부여, 인근지역 전통문화의 뿌리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사물놀이를 할 때는 모든 분들이 우리가 호남출신 인줄 알았다가  충남인 이라는 것을 알고 ‘아!~~~ 그런 가’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사물 소리가 울려 퍼지고 국내에서도 유치원생부터 동네 아낙들, 전문인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노소동락으로 사물을 두드리며 삶을 풀어내고 즐기고 있어 감개무량하고 가슴 벅찬 마음이다.
그래도 조상님들 뵐 수 있는 연결고리는 충분히 만들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남은여생도 내 고향 예산학습당(민족음악원)을 우리 음악의 산실로 만들고 현재 연희학과장으로 있는 대불대학교 학생들도 열심이 가르쳐 세계 문화유산으로 사물놀이를 등재시키도록 노력하겠다.
‘우리 것이 좋은 것’ 이라는 소중함이 지구촌 모두의 소중함으로 자리매김 될 때 우리국민 모두 긍지와 자존심은 더욱 드높아 질것이다.
문화(文化)가 살아야 국가(國家)가 산다.
민족음악원 원장, 대불대학 전통연희학과장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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